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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불가리아에는 하얀 모래 해변, 눈으로 덮인 산 그리고 경치 좋은 푸른 계곡이 있습니다.
대도시는 밤에도 활기찬 기운이 넘치고 중세풍의 도시들은 기세 좋게 펼쳐진 산 습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음식은 너무나 훌륭하고, 모든 것을 값싸게 즐길 수 있습니다.

Bulgaria Map

플로브디프

고대 동쪽과 서쪽의 길을 이어 교차로가 되는 지점이고 불가리아의 제 2의 도시인 플로브디프는 24 세기동안의 긴 역사의 질곡 속에서 흔치않은 보물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구 시가지(The Old Town)

Plovdiv Old Town

꼭 가보셔야 할 곳이 이 구 시가지입니다. 건축물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걸어 다니며 건물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를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자갈로 만들어진 거리와 플로브디프 바로크 양식의 집, 오래된 교회, 로마 시대의 흔적들…이런 것들을 원하신다면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몇몇 집들은 뮤지엄 하우스로 바뀌었습니다. 이곳에서 어느 것이 어디에 있고, 꼭 봐야 할 것들은 어디 있는지 하는 것은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그 속에 들어가서 시간에 흐름에 따라 바뀌는 모습들, 각도에 따라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알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들어가 오래된 집들 사이, 자갈로 만들어진 옛 방식의 길을 충분히 거닐어 보기를 추천해드립니다.

플로브디프에 있는 고원 중, 네벳 테레(Nebet Tepe)에 올라서면, 탁 트인 시야 속에서 이 도시의 모습을 한눈에 접하실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옛 트라키아 사원의 흔적 위에서 플로브디프를 바라보며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테라스가 하나 있는데 여름에는 작은 술집으로 변하기 때문에 술과 함께 충분히 광경을 즐기시다가 언덕을 내려올 수 있습니다. 평온함과 아름다운 광경이 있는 곳입니다.

메인 거리

크냐즈 알렉산더르 바텐버르그(Knyaz Aleksander Battenberg)는 보통 ‘알렉산드로브스카(Alexandrovska)’로 불리는 주요 보행자 거리입니다. 이곳은 반드시 구경하고 넘어가셔야 할 플로브디프의 자랑 중 하나입니다. 일 년 내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몰려나와 거리를 메우고, 특히나 패션을 사랑하는 불가리아 인이 이곳 저곳에 생겨난 상점에 들러 구경하는 옷의 천국입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도 많이 있습니다.

메인 거리는 2300년 전, 마케도니아의 필립이 지은 거대한 운동경기장 터 위에 지어졌습니다. 운동경기장은 한 때 웅장한 형태를 자랑하며 이 길 끝에 남아있었습니다. 땅 위에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의 형체가 보행자길 위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길을 따라 있는 아름다운 집들은 대부분 보수가 되었거나 진행 중이고, 현재는 패션샵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불가리아의 젊은 세대는 문화적 기준을 주변의 서유럽에 두면서 자신들의 생활 형태를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중에 옛 불가리아의 공산주의의 유산은 자연히 소멸하고 있습니다.

랜드 마크

  • 로마 원형 극장(The Roman Amphitheatre)
  • 구시가지(The Old Town)
  • 요새의 벽과 문(Fortress walls and gate)
  • 고대 극장(Ancient odeon)
  • 로마 경기장(Roman stadium)/li>
  • 로마 포룸(Roman forum)
  • 로마 수도교(Roman aqueduct, 水道橋)
  • 에이레나 모자이크(Eirene mosaic)
  • 고대 시나고그(Ancient synagogue)
  • 성 콘스탄틴과 헬레나 교회(St. Constantine and Helena Church)
  • 사하트 테페와 시계탑(Sahat Tepe hill and clock tower)
  • 네베트 테페 콤플렉스(Nebet Tepe hill complex)
  • 주마야 모스크(Dzhumaya Mosque)
  • 이마렛 모스크(Imaret Mosque)
  • 옛 터키 목욕탕(Old Turkish Bath, 현재는 미술 갤러리)
  • 성모 마리아 교회(Virgin Mary Church)
  • 성 페트카 교회(St Petka Church)
  • 성 마리나 교회(St Marina Church)
  • 성 루도빅 로마 가톨릭 성당(St Ludovic Roman Catholic Cathedral)
  • 고딕 에반젤리스트 교회(Gothic Evangelist Church)
  • 짜르 시메온의 정원과 노래하는 분수(Tsar Simeon’s Garden and The Singing Fountains)
  • 메인 거리
  • 로잉 수로(The Rowing Canal, 스포츠와 레크리에이션 공원)

당일 여행

바츠코보 수도원과 아센의 요새(Bachkovo Monastery and Assen’s Citadel)

Bachkovo Monastery

바츠코보 수도원은 플로브디프 남부에서 29km 떨어져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 자가용으로 30분 만에 다다를 수 있는 두 번째로 큰 수도원입니다.

1083년에 힘 있는 조지아 정치가이자 비잔틴에서 군사 지휘권을 갖는 왕자 그리골 바쿠리아니스제(Prince Grigol Bakurianis-dze)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13세기 이래로 조지아 인들은 이곳이 있는 자신들의 영토를 잃어버렸지만, 14세기 초까지 조지아 인들의 풍습이 지켜졌던 곳입니다.

제 2차 불가리아 왕국이 지배하던 기간 동안, 짜르 이반 알렉산더르(Tsar Ivan Alexander)는 바츠코보 수도원을 지원했고, 그 증거로 현재까지 수도원 납골당 앞 넓은 공간에 있는 아치형 건축물에서 그의 이미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11세기 이후, 수도원에 학교가 하나 설립되었습니다. 타르노보 문학 학교의 건립자이자 마지막 중세 불가리아 정교회의 대주교이기도 했던 파트리아츠 에브티미(Patriarch Evtimiy)가 터키에 의해 강제 추방당해 바츠코보 수도원에 머물다가 14세기 경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수도원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터키 군의 침략의 여파로 약탈과 파괴의 만행이 벌어졌었지만 15세기 말, 다시 재건하게 됩니다. 대식당에 그러진 벽화는 작가 미상의 것인데 예술적으로 중대한 가치를 인정받아 1601년에 재건축에 들어갔고 1604년에 복원을 마무리 짓습니다. 성모 마리아 교회 역시 아직까지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수도원 앞 가판에는 로도피 산에서 나거나, 그런 것들을 이용해 가공한 것들을 팔고 있습니다. – 희귀한 허브, 야생 과일로 직접 만든 잼, 요거트, 양이나 버팔로 젖으로 만든 치즈, 울 카펫 등

아센의 요새(Assen’s Citadel , Assenova Krepost)

Assen's Citadel

가파른 암석으로 이루어진 절벽 위에 위치해있는 이 요새(11-12 세기)는 바츠코보 수도원을 바라볼 때의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불가리아의 훌륭한 왕 중 한명인 짜르 이반 아센 2세(Tsar Ivan Assen II)의 통치 시 지어진 이 건물은 현재는 그 터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중세 교회인 성모 교회(Holy Mother of God)만 일부 복원되어 남아있습니다.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자연적인 요새 기능을 하고 있는 험준한 로도피 산맥과 그 빽빽한 숲의 조화가 환상적입니다. 요새가 있는 주변의 또 다른 봉우리에는 성 일리야의 예배당(the chapel of St. Ilia)이 있습니다.

 

페르페리콘(Perperikon)

Perperikon

페르페리콘은 로도피 산맥의 동쪽에 위치한 꺼르잘리(Kardzhali)에서 북쪽으로 20 km쯤 위치해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곳의 이름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기원전 2,000년, 이곳은 단순히 가시덩굴과 블랙베리가 무성하고 빽빽하게 자라던 작은 바위 봉우리였습니다. 여기저기에서 고대의 것으로 보이는 돌담벽과 선인장 밑으로 깊게 파인 틈이 발견된 것입니다.

한때, 고고학 발굴이 이루어졌습니다만, 바위에 난 틈은 너무나 오랫동안 사람의 출입이 없어 수풀로 뒤덮여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주변 마을 주민들도 이곳으로 오르는 길을 잊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2000년, 8월의 찌는 듯 한 더위 속에서 학생 몇몇은 수풀을 걷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예산은 부족했습니다. 학생들의 담당교수 또한 함께 발굴에 참여했습니다. 39-40° C의 타는 듯한 날씨 속에서 그들은 계속 작업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작업이 진행될수록 그들 앞에 나타나는 방, 복도, 커다란 홀의 형상 앞에서 모든 고통을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커다란 고대 궁전을 볼 수 있고, 아래층에 있던 선인장 무더기가 붕괴를 막아 오늘 날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http://www.perperikon.bg



역사

플로브디프는 굉장히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테네(Athens), 카르타고(Carthage),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은 이곳보다 역사가 짧고, ‘불멸의 도시(Eternal City)’라고 불리는 로마(Rome)보다는 이곳의 역사가 조금 짧을 뿐입니다. 트로이(Troy)와 미케네(Mycenae) 동시대에 존재했던 플로브디프는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도시의 모습이 겹쳐있는 곳이기에, 플로브디프에는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트라키아, 고대 그리스 폴리스, 마케도니아 알렉산더르 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의 자존심, 로마 제국 아래에 있던 트라키아의 수도, 비잔틴의 중심, 불가리아의 요새이자 십자군의 꿈, 이 모든 것이 있는 곳이 플로브디프입니다.

켄드로스(Kendros), 무사이오스(Eumolpia), 필리포 폴리스(Philippopolis), 풀푸데바(Pulpudeva), 트리몬지움(Thrimonzium), 풀덴(Pulden), 포풀딘(Populdin), 플로딘(Plodin), 필리베(Filibe), 이것들은 모두 6,000 – 8,000년 동안 존재를 이어온 플로브디프의 고대 이름입니다. 플로브디프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것은 15세기 문서에서 발견되었고 오늘 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 옛날, 플로브디프는 탁심(Taxim), 네벳(Nebet), 잠바스(Jambaz), 사하트(Sahat), 젠뎀(Jendem), 부나르직(Bunarjik), 마르코보(Markovo) 이렇게 7개의 언덕 위에 위치해있었습니다. 7번째 언덕인 마르코보는 현대 플로브디프의 포장도로 밑으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기원전 432년, 마케도니아 필립 2세에 의해 정복당했습니다. 그의 정복 기간 동안 트라키아 인들의 요새와 타워는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필립 2세는 이곳에 ‘필리포 폴리스’라는 이름을 주었고 얼마 후, 다시 이곳은 트라키아 인의 도시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 방식대로 ‘풀푸데바’로 불립니다. 1세기 동안, 이곳은 로마인들의 손에 넘어갑니다. 그리고 다시 이름은 ‘트리몬지움(세개의 언덕 위에 놓인)’으로 불리는데 그 당시의 이곳이 탁심, 네벳, 잠바스, 세 언덕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황제 트라야누스(Trayanus),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lius)는 도시 주변으로 단단한 요새들을 만듭니다. 이들은 이곳에 주화 조폐권을 부여하고 더 많은 성장을 이룹니다. 이 당시에 플로브디프는 ‘울피아 트리몬지움(Ulpia Thrimonzium)’라는 이름으로 트라키아 인들의 지방에서는 가장 번화한 메트로폴리스로 알려졌습니다. 이 아름다운 원형 극장은 로마 시대에 지어진 것입니다. 현재 이것을 복원하여 클래식 드라마, 오페라, 콘서트 등이 야외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447년, 훈족(Huns)는 이 도시를 파괴합니다. 6세기에는 슬라브 인(Slavs)이 발칸 반도에 정착하고 이곳의 이름을 ‘풀덴(Pulden)’, ‘플룬디프(Plundiv)’로 부릅니다.

815년, 칸 크룸(Khan Kroum)은 이 요새를 포위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5세기 동안, 이곳은 불가리아의 손에 넘어갑니다. 그리고 비잔티움의 침략을 받습니다. 십자군은 메카로 향하는 도중, 비잔틴의 손에 넘어간 이곳을 파괴하고 약탈합니다.

1365년은 플로브디프에게는 운명이 걸린 중대한 해였습니다. 도시가 터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이름은 ‘필리베’로 개칭되고 행정, 군사의 중심지가 됩니다. 그리고 루멜리아(Rumelia)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됩니다. 당시, 이 도시가 가진 미스테리한 매력과는 달리 오리엔트의 전형적인 모습은 확실히 부족했습니다. 주마야 모스크(Jumaia Mosque)는 아름다운 미나렛과 해시계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습니다.

도시의 상업지역은 모스크와 마리짜 강(River Maritza) 사이에 있습니다.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탑 중 하나가 ‘사하트 테페’ 뒤 쪽에 위치해있고, 아직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터키 여행가인 에블랴 첼레비(Evlya Chelebi)는 1651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필리베는 터키에 속해있는 유럽 중에서 큰 도시 10개 중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그리고 심지어 매일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19세기는 플로브디프에 르네상스를 가져다 줍니다. 그 동안 터키의 문화적 탄압에 움츠려있던 문화가 꽃 피운 것입니다. 이 시기부터 불가리아 국민들은 계몽되고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독립을 위해 싸우기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자유를 염원하던 플로브디프는 1878년, 1월 19일, 500년 동안의 기다림 끝에 독립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해방감에서 오는 황홀함도 잠시였습니다. 베를린 의회는 불가리아 공국(Prinsipality of Bulgaria)와 동 루멜리아의 자치권을 가진 지역 – 이곳의 수도는 플로브디프, 이렇게 둘로 나누었습니다. 7년 후인 1885년 9월 6일, 불가리아 통일이 승인되었고, 이것은 불평등했던 베를린 조약의 첫 번째 개정이었습니다.

1944년 9월 9일, 나치는 불가리아를 떠나고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과거 USSR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며 USSR의 영광과 관련된 많은 기념비들을 세웠습니다. 그 중 하나가 ‘러시아 군인 알료샤를 위한 기념비(The Monument of the Russian soldier Aljosha)’입니다. 이것은 플로브디프의 한 언덕 위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불가리아가 공산주의의 허물을 벗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 1989년 11월 10일. 플로브디프는 불가리아의 민주주의를 위해 벌어졌던 시위 중 크고 작은 주요한 시위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플로브디프를 ‘the blue (민주주의) capital of Bulgaria’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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