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에는 하얀 모래 해변, 눈으로 덮인 산 그리고 경치 좋은 푸른 계곡이 있습니다. 대도시는 밤에도 활기찬 기운이 넘치고 중세풍의 도시들은 기세 좋게 펼쳐진 산 습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음식은 너무나 훌륭하고, 모든 것을 값싸게 즐길 수 있습니다.
불가리아 해변의 수도, 흑해의 여왕 등으로 불리는 바르나는 불가리아 흑해연안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불가리아 내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해안을 따라 만(灣)을 형성하는, 하나의 원형극장처럼 생긴 이 도시는 정원과 포도원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확실히 바르나는 훌륭한 동유럽의 해변 도시 중 하나로 불가리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대표 휴양지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해변의 공원을 거닐거나 아쿠아리움에서 돌고래공연을 보세요. 무료 워터 파크에서 즐기고 해변카페에서 쉬세요. 무엇이든 바르나에서 하는 모든 것은 즐겁고 저렴할 것입니다. 바르나는 불가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아니지만 가장 멋진 곳입니다.
바르나 시내 중심은 여행객들이 걸어서 관광하기에 알맞게 되어있습니다. 시내 중심 길을 따라 위치해있는 수천 개의 가게들과 카페보다 더 좋은 쇼핑구역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바르나 도심에는 큰 아웃도어 마켓이 있는데, 이곳에서 고품질의 좋은 옷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 마켓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황금 돔이 장식된 대성당 건너편 분홍색 길 끝에 있습니다.
바르나는 세계에서 가장 흥미롭고 놀 거리가 풍부한 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재미있는 일들이 생기고 지금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이곳, 바르나입니다. 다양한 바, 레스토랑, 카니발 게임, 워터 파크, 야외 디스코 같은 엔터테이먼트가 다양하고,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없는 멋지고, 아름다운 8 등신의 미남, 미녀가 모이기도 하는 곳입니다.
바르나의 밤은 여러분이 어느 곳에서 어느 시간에 겪은 경험보다 더 많은 짜릿함을 선사할 것입니다. 바르나의 해변은 낮이나 밤이나 여름날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벼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실 겁니다. 나이트클럽, 디스코, 레스토랑, 영화관, 카니발 게임은 큰 재미를 안겨줍니다. 그리고 애주가들을 위해 참고로 말씀 드리면 이곳, 불가리아에서는 보드카가 거의 공짜나 마찬가지랍니다!!!
http://www.programata.bg/바르나를 더 즐기시길 원하신다면
문화적, 역사적으로 의미와 시대를 달리하는 유물들이 150여 개 이상이 바르나에 보전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빼어나고 유명한 것들은 모아봤습니다.
골든 샌드 리조트는 바르나에서 북쪽으로 꽤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 위치한 리조트 단지입니다. 주로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졌고, 가격은 바르나 보다 다소 높은 편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보시기에 약간은 더러운 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좋은 방향으로 더러운(?) 곳입니다.
골든 샌드는 도심 속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긴장을 잠시나마 깨끗이 잊어버릴 수 있는 곳입니다. 수백 개의 바와 수 십 개의 댄스클럽, 스트립 클럽이 있어, 낮에만 즐기고 쉬는 휴양 개념보다는 낮과 밤을 모두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휴양지입니다. 또 훌륭한 해변에 수여되는 상을 받을 정도로 잘 관리되고 있고, 4개의 워터 파크, 수십 개의 바와 레스토랑, 해변에선 소 모형의 로데오 게임도 즐길 수 있습니다. 멋지지 않나요?
록키 알라자 수도원은 골드 샌드에서 북서 방향으로 4 km 떨어져있고, 바르나의 북동 방향으로 12 km 떨어진 자연 공원, 골드 샌드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수도원은 자연적으로 아름다운 바위에 생긴, 나무와 관목들. 그리고 보존 중인 역사적 장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땅에서 20 m 떨어진 위쪽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는 방과 수도승들이 쓰던 공간, 14세기 중세 벽화가 남아있는 예배당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 수도원은 4-5세기부터 수도승들이 활용한 흔적이 보이는 바위 동굴 안에서 13세기에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18세기까지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에브크시노그라드 궁전은 바르나 북쪽 5 km 떨어진, 수많은 이국적인 식생의 아름다운 공원이 있는 해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곳은 알렉산더르 I 배텐베르그 왕자(1879-1886)이 여름에 머물던 곳이었고, 후에 통치자의 거주지로 바뀌었습니다. 항구, 와인 저장고, 의무실과 스포츠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입구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은 제한하고 있고,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만 한정적으로 방문객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바르나의 서쪽 방향으로 17 km정도 떨어진 곳에 불가리아에서 가장 자주 방문하는 뽀비띠 까머니 자연 경관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곳의 매우 독특한 돌의 형태는 50 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속이 텅 빈 돌기둥은 높이는 7 m, 지름은 2 m까지 되고, 모래와 화강암이 감싸고 있고, 모래 위에 솟아있습니다. 이 기이한 형상의 기원에 관한 여러 가지 설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영화 제작사들에게 이곳은 흥미로운 배경을 만들어 줍니다. 주변 도로 오른쪽에는 조그만 박물관이 마련되어있습니다.
캄치야 강 유역은 불가리아 흑해 연안 중에서 가장 자연적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바르나에서 강어귀까지는 도로를 따라 25 km를 달려야 합니다.
강의 양쪽 어귀 모두 자연 보존 지역인 캄차야 강은 도리어 붐비기만 하는 휴양지를 피해 자연과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훌륭한 대책입니다.
스타라 플라니나 산(Stara Planina Mountain)을 통과하는 캄치야 강은 열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론고자(Longoza)’ 기슭을 따라 유유히 굽이쳐 흐릅니다. 게다가 다양한 나무와 관목, 양치류, 갈대, 수중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자주 물이 침범하는 지역이라 유네스코에 의해 보존되고 있습니다. 보존 지역은 길이 40 km(론고자 숲부터 강어귀까지), 폭 5 km이고, 그곳에서 사슴, 도둑 갈매기, 독수리, 멧돼지, 살쾡이 등을 서식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동식물의 보고를 더 가까이서 보고 싶으시다면 지역 프로그램을 통해 잊을 수 없는 보트 투어를 비교적 적은 가격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흑해 연안의 조그만 만(灣)에 있는 마을과, 리조트가 위치한 발칙 마을은 바르나에서 북쪽으로 31 km 떨어진 곳이 있습니다. 크기는 크지 않지만 이곳은 바르나, 부르가스에 이어 불가리아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항구가 운영 중입니다.
이곳에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건 기원 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 크루노이(Crunoi, 후에 Dionysopolis), 트라키아 인들의 정착(기원 1 천 년 전), 동석기 시대(기원 3-4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바다에서 바라본 빼어난 마을의 광경을 그리스 시인 오비디우스(The Great Ovid)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하얀 바위의 마을, 나는 이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움을 갖는 그대에게 경예를 표할 수밖에 없노라!”
밀레토스 식민지 개척자들은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이 바다 거품에서 나왔다고 믿었습니다. 이곳의 카르스트 지형에서 분출되는 온천은 이 마을의 이름을 쿠르노이(온천, 원천이라는 고대 그리스어)라고 불리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 이름은 디오니소폴리스(Dionysopolis)였습니다. 중세, 이 마을의 이름은 지방 봉건 영주인 발릭(Balik)이라는 이름을 따라 부르게 되었고, 로마 통치 기간에는 시(市, municipios)로서 인정받게 됩니다. 후에, 불가리아 영토로 영입되고, 13-14 세기, 쥐나 바예르(Dzhina Bair)로 옮겨집니다. 이곳은 귀족 출신의 발릭(Boyar Balik)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기 때문에 ‘발칙’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크림 전쟁(1853 – 1856)이 막을 내리고, 이곳은 옥수수 거래의 중심으로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1913년, 발칸 전쟁이 끝나고 이곳은 루마니아의 영토로 영입되었습니다. 이곳의 자연의 아름다움에 반한 마리아 여왕(Queen Maria)이 루마니아 귀족을 위한 궁전과 보타닉 가든, 예배당과 빌라 단지를 지었습니다.
이 마을은 럭셔리한 리조트로 바뀌었습니다.
1940년, 발칙은 다시 불가리아 영토로 편입됩니다.
이곳은 많은 역사적, 자연적 명소와 좁은 해변 길, 호텔, 캠핑 장소를 갖게 됩니다.
궁전뿐만 아니라 궁전 단지, 발칸에서 제일 크고, 가장 다양한 보타닉 가든, 그리고 여러 세기 동안 잘 보존되고 있기 때문에 고대의 분위기를 품은 매력적인 장소들이 이 마을에는 많습니다.
자갈이 깔린 길을 걸어서 타타르 쿼터(Tatar Quarter)와 돌과 찰흙벽돌로 만든 집들을 돌아보십시오.
1924-1931년, 루마니아의 마리아 여왕에 의해 지어진 옛 궁전은 이탈리아 건축가들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궁전 단지의 구성(10개의 빌라와 하나의 예배당)은 다양한 건축 양식들이 자유롭게 섞여있습니다. 이곳은 당시 현대적인 스타일의 중앙 궁전, 높은 타워, 수많은 빌딩, 공원, 구획이 잘 되어있는 길, 커다란 기둥으로 바다를 향해 지어진 여름별장, 오래된 나무 아래 있는 마리아 여왕이 앉아서 석양을 바라보기를 즐겼던 의자, 조그만 예배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의 그림 같은 공원은 프랑스 정원 디자이너, Jules Janine이 참여했던 프로젝트로 1924-1936년 만들어졌습니다. 200 종 이상의 나무, 수많은 꽃, 독특한 선인장 콜렉션(약 250 종 이상)이 정원의 자랑 중 하나입니다.
보타닉 가든에서도 3,000여종의 희귀한 이국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4 km정도의 길이로 가볍게 산책하기에 좋은 해변 길은 항구와 작은 길들이 이어져있습니다. 그곳에는 작은 민속사 박물관이 있고 성 니콜라 교회(St. Nikola Church, 1866)라고 불리는 오래된 교회가 도시 안에 잘 보전되어 있습니다.
궁전 안의 커다란 레스토랑을 제외하고, 호텔, 시내에는 수많은 조그만 식당이 있고, 해변가에는 해산물, 피자, 스파게티 등 다양한 종류의 유럽식 식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식료품 가게도 잘 갖추어져 있어 직접 요리를 해먹는 관광객들은 따로 재료를 준비해가지 않아도 됩니다.
바르나는 1,0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리적인 장점 때문에, 첫 번째로 고대 트라키아 인들의 정착지였습니다. 그들은 이곳을 코르비시(Corbisi)로 불렀고, 작은 어촌이 형성되었습니다. 기원 6세기 전, 그리스 폴리스, 오데소스(Odessos)로 개명되었습니다. 이 마을은 어업과 농업 부락을 형성했는데, 발전하여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기원 4세기 전에는 마케도니아 알렉산더르 대왕의 군대에 둘러싸이게 되지만, 함락하는데 성공 하지는 못합니다. 대신에 알렉산더르 대왕이 소유한 제국 안에서 제한적인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기원 전 1세기까지 자치적인 도시 국가 형태를 유지하면서, 이곳 신(神)의 형상을 담은 고유의 화폐도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후에, Mark Lukulus 군대에 의해 정복되었고, 로마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점점 중심지로서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9세기, 이미 ‘바르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3세기 초, 칼로얀 왕(King Kaloyan)이 지배하고 있던 불가리아의 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
13-14세기, 이곳은 크고, 잘 갖추어진 항구였고, 베니스(Venice)와 제네바(Genoa)와의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곳 이름 바르나는 폴란드의 왕 블라디슬라브 바르넨칙(Wladyslaw Varnenchik)과 관련 있습니다. 터키의 유럽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폴란드,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가 모인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 가던 중, 트란스발(Transvaal)의 지배자였던 사비냔 얀코(Janos Huniadi)와 함께 1444년 11월 10일, 바르나에서 벌어졌던 역사적인 전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강력한 방어체제가 갖추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391년 터키에 의해 함락되었고, 터키 식 집(konaks), 터키 목욕탕, 모스크가 만들어지면서 점차 터키의 모습을 갖추어갔습니다. 1878년, 바르나는 오토만-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나 불가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해양 항구가 되었습니다. 이미 산업화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변 리조트로 발달되어 현재는 불가리아 사람들이 휴일에 자주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한때 스탈린의 이름을 따와 부르기도 했던 이곳의 이름은 다시 1956년 바르나로 개칭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