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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불가리아에는 하얀 모래 해변, 눈으로 덮인 산 그리고 경치 좋은 푸른 계곡이 있습니다. 대도시는 밤에도 활기찬 기운이 넘치고 중세풍의 도시들은 기세 좋게 펼쳐진 산 습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음식은 너무나 훌륭하고, 모든 것을 값싸게 즐길 수 있습니다.

Bulgaria Map

소피아

Sofia지난 10년 동안 불가리아가 걸어온 급성장은 경이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먼 과거의 기억이 되었습니다. 사실, 불가리아는 발칸반도라는 빈번한 소동과 민족적 분단이 이루어진 곳에서 다소 평화적인 예외에 속합니다.

우리가 유럽에서 찾아낼 놀라움 가운데 하나는 소피아의 중심가입니다. 본질적으로 소피아는 바, 장신구 판매점, 나이트클럽, 펍, 디스코 등이 체계화된 관리를 받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는 365일 내내 재미를 쫓는 불가리아 인들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고대 유적, 박물관, 교회, 갤러리, 레스토랑을 걸어 다니며 누빌 수 있습니다. 고유의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불가리아 음식을 드셔보십시오. 그리고 불가리아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시고, 밤에는, 아침까지 신나게 놀 수 있는 나이트클럽으로 마무리 해보세요.

“저는 시월의 어느 금요일 밤에 소피아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가진 2주일 동안 주로 불가리아의 역사적인 마을이나 기차를 타고 허름한 여관에 묵는 것이 제 계획이었죠. 제가 소피아에 있었던 이유는 그 전에 사람들로부터 굉장히 싸면서 멋지고, 흥미로운 곳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죠. 소피아에서 이번 여행을 시작한 것도 단순히 공항이 거기 있어서였습니다.

이곳에서 하루 24시간이 지나고 나서 저는 말했던 계획을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워버렸습니다. 기차도, 역사적인 마을도 다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소피아 하나면 됐었죠.

저를 사로잡은 소피아는 꽃, 분수, 조형물, 기념비적 건물들, 넓은 대로, 풍부한 볼거리를 갖은 공원, 훌륭한 레스토랑으로 가득한 사랑스럽고, 생기 있는 멋진 도시였습니다.

가격은 제가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삼분의 일, 유럽 대부분에 비하면 사분의 일 정도로 너무나 저렴했습니다. “

The Times의 특파원, Barry Zwick,

랜드 마크

여행객에게 인기 있는 소피아의 명소:

  • 후기 로마 교회인 성 게오르기 교회(4세기) – 셰라톤 소피아 호텔(Sheraton Sofia Hotel) 안쪽에 위치
  • 야외 책 시장, 슬라베이코브 광장(Slaveykov Square)
  • 초기 비잔티움 교회, 성 소피아 교회(6세기)
  • 황금 돔의 알렉산더르 네브스키 성당(Alexander Nevsky Cathedral)
  • 성 네델랴 교회(St Nedelya Church)
  • 작은 규모의 성 페트카 교회(Church of St Petka of the Saddlers, 14 세기) – 가치 있는 프레스코 화 보관 중
  • ‘조국의 해방자’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기념 동상
  • 반야 바시 모스크(Banya Bashi Mosque)
  • 소피아 시나고그(Sofia Synagogue) – 발칸 반도 최대 크기
  • 불가리아 국립 역사박물관(Bulgarian National Historical Museum)
  • 국립문화회관 – 1981년에 개관한 남동부 유럽 최대 크기의 다목적 콤플렉스
  • 이반 바조프 국립 극장(Ivan Vazov National Theatre)
  • 해외 미술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Foreign Arts)
  • 고고학 박물관(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 중앙 온천장(Sofia Public Mineral Baths) – 질 좋은 마욜리카로 장식, 1911년 완공
  • TZUM – 소피아에서 최고(最古), 최대(最大)의 백화점
  • 소피아의 중앙 대로에 깔려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온 노란 블록
  • 보리스 가든(Borisova gradina) – 1884년부터 만들어진 소피아의 가장 오래된 메인 가든
  • 라르고 지구(The Largo) – 각종 국가 기관의 본부가 몰려있는 소피아 시내에 위치한 건축 단지
  • 국립 민속사 박물관National Ethnographic Museum)
  • 국립 자연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 지구와 인간 박물관(Man and Earth Museum, 광물 박물관)
  • 레이디스 마켓(Lady’s Market) – 소피아 최대(最大)의 야외 시장
  • 피로트스카 거리(Pirotska street) – 번화한 쇼핑 거리
  • 그라프 이그나티에프 거리(Graf Ignatiev street) – 소피아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거리
  • 공산당 본부(Communist Party Building)
  • 이름 없는 군인을 위한 묘(Monument Of Unknown Soldier)
  • 불가리아 과학부(Bulgarian Academy Of Science)
  • 소피아 대학교(Sofia University)
  • 독수리 다리(Eagles Bridge)
  • 소비에트 군사 기념비(Soviet Army Monument)

당일 여행

릴라 수도원(Rila Monastery)

Rila Monastery불가리아에서 딱 한 가지 꼭 봐야 할 것을 찾으면 그건 바로 릴라 수도원입니다. /p>

위엄 있는 릴라 산맥의 경사에 위치한 이 수도원은 불가리아에서도 가장 인상적이고,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릴라 수도원은 높은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형태를 취하고 있고, 수백 년 동안 숲에 가려져 있던 곳입니다. 이곳의 자연은 수도원을 제외하고도 한번쯤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평생을 은둔자로서 살며 릴라 수도원을 세운 성 요한(Ivan Risky)은 봉건 사회 속에서의 만행과 9세기에 만연했던 여타 수도원들의 해이함을 피해 깊은 골짜기까지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백 년이 흐린 현재까지 깊은 고립감이 이곳에 머물러있습니다. 성 요한은 살아생전, 조그만 은둔처로서 시작된 이곳에 모여든 제자들에게 “누군가 봉사하는 자가 이중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라고 선교했다고 합니다.

그의 죽음 이후, 이곳은 중요한 정신적인 성소, 그리고 중세 동안 정교회의 중심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해마다 세계 각지에서 수백만이 넘는 순례자와 여행객, 학자, 미술가들이 수도원이 갖는 건축학적인 아름다움과 종교로서 의미를 갖는 중요한 유물과 그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습니다.

옛 순례자들이 걸어서, 노새를 타고 왔던 것과는 다르게 요즘의 방문객들은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이곳에 옵니다.

1980년, 국제관광기자작가재단(FIJET)이 문화·관광분야의 오스카 상(賞)과 같은 최고의 영예이자, 상인 ‘황금 사과 상’을 이곳, 릴라 수도원에 수여했습니다.

1983년에는, UNESCO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며 다시 한 번 그 문화적 가치에 대해 조명 받았습니다.

비토샤 산

Mountain Vitosha세상에는 수많은 나라, 수많은 수도가 존재하지만, 소피아만큼 주변이 높은 산과 단층 지괴로 보기 좋게 둘러싸여 있는 수도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 비토샤 산은 수도, 소피아로부터 20 km 밖에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이곳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2290 m(7000 피트)로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지역 주민들과 여행객들은 여유롭게 소풍을 즐기고, 야생 약초, 산딸기를 캐기 위해서, 그리고 장엄한 전망을 만끽하기 위해 이곳 비토샤에 모여 듭니다. 특히나 겨울에는 스키를 타러 오는 스키어들로 붐비는 곳입니다. 가장 높은 봉우리인 체르니 브러흐(Cherni Vrah, 검은 봉우리)를 오르는 것은 오래 전부터 등산객들의 사이에서 체력을 테스트하는 일종의 시험이 되었습니다.

두 대의 곤돌라와 리프트 한 대 덕분에 소피아 시내 전경이 보이는 산등성이까지 손쉽게 이동이 가능합니다.

여름에 등산하시는 분들은 짙은 녹음의 숲이 쉼터를 마련해주고, 잔잔히 흐르는 시내, 밝은 햇살을 받아 포근함이 전해지는 풀밭은 지천에 널린 꽃, 열매와 함께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비토샤의 겨울은 스키어에게 잘 정비된 리프트와 로프토(rope-tows), 유명한 스키 학교를 제공하기에 최적의 장소라 부를만합니다.

알레코(Aleko)와 황금 다리(즐라트니떼모스토베, Zlatnite Mostove)는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명소입니다. 알레코는 해발 1800 m의 비토샤 산 동쪽에 위치해있고, 가장 큰 스키센터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유럽 하이킹 루트 E-4, 불가리아 부분이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이곳보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가보면 불가리아에서 가장 큰 자연 스키 슬로프인 스테나타(Stenata)가 있습니다. 알레코는 또한 체르니 버르흐를 오르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고도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500 m를 가는데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릴 정도로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드신 분들은 말럭 레젠(Mt. Malak Rezen)까지 오르는 리프트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리프트는 완만한 경사면을 통해 꿈같은 전망을 가진 봉우리에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말럭 레젠까지 오르는 모든 경로에는 푯말로 진행 경로를 표시되어 있고, 어떤 구간은 스키장을 지나가기도 하기 때문에 실종사고의 염려를 최저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기상여건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높은 봉우리까지의 등산은 권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매우 독특한 자연 현상 중 하나로, 무수한 바위가 강을 이루었다고 하여 ‘돌강(-江, Stone river, Moreni)’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둥글둥글한 화강암이 여러 골짜기에 쌓여, 길이 2 km, 폭 50 m의 돌강을 이루고 있습니다. 많은 돌강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곳은 황금 다리(Golden Bridges)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이곳 모래알에서 금이 씻겨 나왔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이곳도 비토샤의 최고봉 체르니 브러흐로 가는 출발점 중 하나입니다. (약 3 시간 정도 소요), 이 경로를 통해서 가면 산간지방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되고, 아름다운, 오두막 형태의 집들이 모여 있는 쿠마타 마을(Kumata, 약 1시간)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코프리브시티차(Koprivshtitsa)

Koprivshtitsa하루 동안 떠나는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코프리브시티차 마을 여행을 하신다면 모든 것이 몇 백 년 과거로 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실 겁니다. 하얀 돌담 벽으로 자라는 담쟁이 넝쿨과 제라늄은 가든을 둘러쌓아 꽃을 피웁니다.

아치형 돌다리는 깨끗이 흐르는 토폴니차 강(Topolnitsa River) 위를 지나고, 무거운 대문을 지나 베란다, 툭 튀어나와있는 창문, 처마가 있는 파랗고, 노랗고, 빨간 형형색색의 집들이 보입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넓은 방은 밝은 색상의 깔개와 쿠션, 정교하게 조각된 나무 천장과 찻장, 구리로 만들어진 식기와 질그릇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왜 건축가들은 ‘코프리브시티차에 있는 모든 집들은 그저 하나의 예술’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작은 마을은 소피아에서 동쪽으로 두 시간쯤이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진정한 불가리아 르네상스 건축의 민속사 박물관입니다.

불가리아에서 해안가 마을인 소조폴(Sozopol)을 제외하면, 코프리브시티차라는 마을이 가진 자체적인 매력과 풍기는 역사적 가치를 따를 만한 경쟁상대가 없습니다. 이 두 마을의 닮은 점이라면 조그만 돌들로 만들어진 좁고, 경사진 길이 이곳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겁니다. 코프리브시티차의 오래된 집들은 집집마다 다른, 생기 넘치는 색깔로 꾸며져 있습니다(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돌 담벽은 굉장히 높고, 두껍게 세워져 있는데 이건 명백히 실용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오토만-터키에 지배하에 있던 시절, 터키 군사에게 불가리아 여인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독립을 위한 개혁 운동을 비밀리에 진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때문에 터키 군사들은 벽에 가까이 다가가서도 무언가를 들을 수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볼 수도 없었던 것이죠.

한 때, 수공예와 교역의 중심이었던 이곳은 현재, 집들이 조그맣고 안락한 호텔로 개조되면서 주로 관광지로 탈바꿈되었습니다. 그리고 ‘메하나(Mehana)’로 불리는 전통적인 형태의 불가리아 레스토랑 혹은 바들도 관광객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음식을 포함한 모든 분위기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관습적인 불가리아의 모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가깝고도 옛 불가리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소피아 주민들에게 선호하는 주말 여행지입니다.

불가리아 국립 역사박물관(National Historical Museum)

1989년 10월 10일, 공산정권 지도자의 거주지로서 사용되던 이곳은 토도르 지브코프(Todor Zhivkov)가 시민의 거센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퇴각하자, 지금의 국립 역사박물관은 불가리아 전체에서 가장 수준 높은 소장품들을 보관하는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1981년, 불가리아 건국 1300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진귀한 것들을 다시 모아 들였습니다. 그 중, 트라키아 인들의 세밀함이 돋보이는 금장식을 위해 새롭게 넓은 공간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그것들을 현재 온전히 감상할 수 있습니다.

얕은 돋을새김한 도자기, 질그릇, 은 공예품 등은 중세 수도의 업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민속 의상, 카펫, 등 국가 부흥 시기부터의 풍부한 소장품들이 보관되고 있습니다. 또, 중세의 것부터 현대에 이르는 여러 시대의 보물(the Panagyurishte treasure), 도자기, 고고학 유물 등이 남아있어 방문할만한 가치를 높입니다.

바르나의 할콜라이트 공동묘지(halcolite necropolis)는 인간이 소유했던 가장 오래된 보물 형태의 금괴로 알려져 있습니다(기원전 4,000년). 파나그우리슈테 보물(Panagiurishte, 기원전 4세기경), 레트니짜(Letnitsa) 보물은 도금한 은, 불가리아의 위대한 왕 가운데 한 명인 칸 오무르탁(Chan Omurtag, 9세기) 시대에 쓰인 글귀가 있는 기둥, 이콘, 보석류, 한때 불가리아 왕이었던 칼로얀(Kaloyan, 12세기)이 사용한 금반지, 금도장 등이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역사적 시기를 달리하는 650, 000개의 소장품들이 진열되어있습니다.

http://www.historymuseum.org/?lang_id=1

보야나 교회(Boyana Church)

소피아 교회, 비토샤 산 작은 기슭에 위치한 이 교회는 특별한 역사적, 예술적인 중요성을 갖기 때문에 UNESCO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중세, 보야나는 현재의 소피아의 옛 이름인 스레데츠(Sredets)를 지키는 35개의 요새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 보야나 교회는 그 요새 안에 지어진 교회로 중세 건축과 불후의 걸작들을 보여주는 중대한 하나의 예시입니다.

900년의 역사를 버텨온 성당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잘 알려진 프레스코 화로 유명합니다. 저명한 전문가들에 의하면, 무결점의 기술, 정신적인 깊이, 복잡성과 리얼리즘을 그림에 담아낸 보야나의 예술가들은 중세 불가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미술 역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야나는 13세기부터 터르노보 미술 학교가 전체적으로 보전하고 있는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가치 있는 유적입니다.

http://www.boyanachurch.org/indexen .htm

역사

역사적 문서에 따르면 ‘세르디(Serdi)’라고 불리는 트라키아 부족이 처음 현재의 불가리아 땅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름인 ‘세르디’는 ‘세르디카(Serdika)’라는 이름을 거쳐 현재 ‘소피아’라는 이름의 기원이 됩니다. 그 후, ‘오드리시(Odrissi)’라는 다른 부족이 정착을 합니다. 기원 전 4세기경의 짧은 기간 동안은 마케도니아의 필립과 그의 아들,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이곳이 지배됩니다. 기원 후 29년, 로마에 의해 정복당하고, 황제 트라얀(Trayan)의 통치기간동안 이곳이 로마왕국의 행정을 담당하는 중심이 됩니다. 동시에, 도시는 점점 확대되고, 그에 따라, 커다란 원형 극장이나 공용 목욕탕이 들어서게 됩니다. 기원 후 2세기, 다키아 지방의 아래에 있는 중점 도시 중 하나가 됩니다. 콘스탄틴 대제(Constantine the Great)는 이곳, 소피아를 ‘나의 로마’라고까지 불렀었습니다. 후에, 도시는 유스타니우스 황제(Emperor Justinian)통치 시기 동안 날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아무리 훈(Huns)의 수장이었던 아틸라(Attila)가 5세기에 습격해 정복했지만, 비잔틴 제국은 아틸라의 죽음 이후, 이 지역을 다시 수복했습니다. 9세기까지 동로마 제국의 경계 지표가 도시에 남아있었고, 현재 소피아의 구획은 대략 제 1차 불가리아 제국의 시기에 형성됩니다(681년).

809년, 불가리아 칸인, 크롬(Kroum)은 이 도시를 정복하고, 이름을 발칸반도의 중심이라고 여겨 ‘중간에 있는 땅(Middle Land)’이라는 뜻의 ‘스레데츠(Sredets)’로 바꿉니다. 1018년, 제 1차 불가리아 제국은 비잔틴 제국이 손에 넘어가고, ‘스레데츠’는 ‘산맥 사이(Between Mountains)’라는 의미의 ‘트리아디짜(Triaditsa)’로 개명합니다. 현재의 ‘소피아’라는 이름은 유명한 알렉산드르 네브스키 성당 옆에 있는 성 소피아 교회(St. Sofia Church)의 이름을 따랐습니다. 다시 소피아는 1382년, 오토만-터키 군대의 손에 넘어갑니다. 5세기 동안의 지배동안, 여기저기 생겨난 모스크, 시장, 교회와 로마 건물들 사이에 공용 목욕탕들 때문에 도시 모습의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7세기 동안, 이 도시는 발칸 지역에서 가장 큰 상업 중심지로 발전하게 됩니다. 18세기에는 돌로 포장된 도로가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었고, 19세기, 발칸 반도를 가로지르는 첫 번째 기차 레일이자 잘 알려진 ‘오리엔트 익스프레스(Orient Express)’가 소피아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소피아는 1978년, 1월 4일, 오백 년간의 오토만-터키의 지배를 벗어 던지고 자유 국가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리고 소피아는 1979년, 4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에 위치하기에, 불과 12,000명이 거주했던 곳이지만, 불가리아의 수도로 지정됩니다. 20세기를 지나면서 이곳은 정말 유럽스러운 모습으로 재탄생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이곳의 시가지는 포탄에 의해 많이 부분 파괴되었습니다. 1944년, 이곳에 공산정권이 수립됩니다. 많은 건물들이 스탈린 양식으로 지어지는 시기가 이때입니다(공산당 본부, Tzum, 국립문화회관 같은 건물 등이 그 예입니다.). 현재 소피아는 아직도 많은 수목지역을 가지고 있고, 상대적으로 좁은 교통망을 갖추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소피아 뉴스 에이전시 http://www.novinite.com
소피아 영문 데일리 뉴스.

Sofia Echo http://www.sofiaecho.com
소피아 영문 주간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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